마츠다이라 카타모리 공(松平容保 公)의 석상
막부말기, 당시 교토는 ※존왕양이(尊王攘夷)파에 속한 세력들이
횡행하여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등의 사건들로 인해 치안이 매우
불안정했었어요.
※존왕양이(尊王攘夷) :
왕을 따르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의미로, 당시 일본과 화친조약을
맺는 서구세력을 배척하고, 일본의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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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교토의 마을의 치안을 지키기 위해, 분큐 2년(文久2年, 1862년)
아이즈번(会津藩)의 번주인「마츠다이라 카타모리(松平容保)」는
교토수호직에 취임하게 되었어요.
위험을 동반하는 임무로 인해, 교토각지에서 임무를 완수할 때마다
명성이 올라갔지만, 그의 부하들의 희생도 상당했다고 해요.
「마츠다이라 카타모리(松平容保)」부대가 교토 중에서도
본진으로 사용한 곳이 바로 오늘날의 사교쿠(左京区)에 있는
「콘카이 코우묘지(金戒光明寺)」라는 이름의 사찰이에요.
교토사람들은「콘카이 코우묘지(金戒光明寺)」라는 이름이 아닌
「쿠로타니(黒谷)상」이라고 친근감을 담아 부르는 경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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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찰 내의 작은 건물인 「사이운인(西雲院)」에는
당시에 희생된 분들의 묘지가 마련되어 있어요.
혼란스러운 막부말기, 목숨을 걸고 교토의 마을을 지킨 분들의
묘지에는 1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참배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아요.
특별히 올 6월에는 이 묘지에「마츠다이라 카타모리(松平容保)」의
석상이 건립되었어요.
마치 교토에서 희생되신 번사(藩士)들의 곁을 지키는 모습으로
앉아있는 것만 같아요.
그리고, 지금도 교토의 마을을 지켜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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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카이 코우묘지(金戒光明寺)
오시는 길 :
교토 시버스「히가시 텐노쵸(東天王町)」에서 하차 후, 약 도보 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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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교토검정 1급(京都検定1級) 키후네(貴船)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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